본문 바로가기
어른이가 읽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

by 엘데의짐승 2023. 4. 2.
반응형

 

아는만큼 보이는 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책을 읽기 전엔 제목에서 말하는 눈이 눈(目)인 줄 알았는데 눈(雪)이었다.

 

누구에게 추천받은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은 한동안 내 책장에 꽂여 있었다. 지난 2월까지 토지 완독을 위해 달렸던 피로감을 뒤로 하고 집어든 책은 무려 3주라는 긴 시간을 들일만큼 차근차근 읽기도 했지만 사실 좀 버거웠던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는 도무지 이 책에 묘사된 기후나 날씨, 그린란드와 덴마크의 과거사, 이누이트족의 역사와 문화, 선박, 항해, 빙정석? 기타 등등.... 텍스트로 묘사된 것들을 떠올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본적도 없고 배운적도 없는 것들을 상상할 수 없으니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을 잠시 덮어두고 공부를 하기로 했다. 유튜브를 검색 해서 찾은 비쥬얼 자료는 바로 EBS 의 '세계테마기행' - 극한의 땅, 그린란드에 서다(사랑합니다. EBS) 편을 보고 현대 그린란드인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었고 ChatGPT를 통해 그린란드와 이누이트의 역사 덴마크와의 관계 등을 배운 다음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자 스밀라가 내 맘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페터 회

1957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선원, 발레 댄서, 배우외 다양한 일을 거쳤다고 한다. 그는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덴마크 문학 학자, 작고가 이자 작가인 피터 브라스크라는 사람에게서 문학을 공부했고 개인적인 위기 이후 부유한 사람의 요트에서 선원으로 1년을 일하고 1984년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기위해 돌아온다.

첫 소설이 후 단편소설에 주목받다 이 소설 Smilla's Feeling for Snow(1992)을 발표하고 이듬해. Borderliners를 출판하여 문학적 유명세를 탄다. 93년엔 Borderliners로 덴마크 서점상과 덴마키 비평ㄱ가 문학상을 수상했다. 96년 한권의 소설을 출판한 이후 현재는 사실상 활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에 나오는 그린란등와 덴마크의 과거사부터 현재까지는 물론 선박이나 항해 기타 여러가지 묘사되는 장면들은 그의 경험에서 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생생한 현장감을 불러일으키며 디테일한 묘사가 주는 몰입감은 대단하다.

 

줄거리 (이하 스포일러 일 수 있습니다.)

소설은 어린 소년 이사야 크리스티안센이 눈 덮인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미스터리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이사야와 친구가 되었던 스밀라는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경위를 의심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이사야가 인근 연구 시설의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었음을 의심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스밀라는 이누이트인 어머니의 죽음과 본토 스웨덴인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묘한 거리감과 긴장감을 개선하지 못하고 힘들어한다. 철저히 이누이트 삶을 살아간 어머니, 문명 사회의 명예와 부에 충실한 아버지 그 사이의 스밀라로서는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힘들지만 물질적인 도움은 결국 아버지에게 청할 수 밖에 없다.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면서  정비공과도 가까워지긴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정착하기 어려워 한다. 정비공의 도움으로 한 쇄빙선을 타게 되고 그린란드를 항해하며 어린 소년 이사야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는 하나 둘 씩 밝혀진다.  

 

감상

스밀라의 눈의 감각'은 미스터리, 스릴러, 문학소설 등 장르가 독특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북극의 풍경과 주인공 스밀라 야스페르센의 내면을 생생하고 시적으로 묘사한다.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스밀라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묘사는 이 소설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묘사가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의 호흡을 느리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장르의 특성상 사건과 인물의 갈등과 전개에 집중하려고 하다 보면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책장을 넘기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이기도 하지만 막 읽어나가기엔 너무 좋은 문장과 심리묘사가 가득하기 때문에 천천히, 하지만 집중은 계속해야 하는 약간의 스트레스가 필요한 책이라 여겨진다.

 

 

북유럽 스릴러?라는 장르를 생각했을 때 이 책의 전개는 다소 황당하며 느슨한 것 같다. 소년이 사망하고 경찰은 다소 비적극적이다 라는 이유로 시작한 스밀라의 탐정활동은 중요한 보안시설도 쉽게 뚫기도 하고, 원하는 정보는 한 두번 상대를 만나기만 하면 알아서 건네주는 등,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다소 아쉽다.

긴박한 스토리나 치밀한 구성을 원했다면 많은 아쉬움이 생기겠지만 이 책은 스토리 보다는 스밀라 라는 인물에 좀 더 집중해서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눈(雪)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p64


"죽음이 나쁜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P415

"유빙의 표면은 해류와 얼음판이 충돌해서 위로 솟구치게 된 얼음 덩어리인 이부니크와 얼음 둔덕인 마닐라크. 바람이 단단한 바리케이 드처럼 압축시켜 생성된 눈인 아푸히니크로 이루어진 황무지다.
같은 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얼음을 덮었을 때 썰매 뒤에 흩날리는 눈보라인 아기우피니크를 얼음 위로 날려 보낸다." p549

 

 

스웨덴, 그린란드가 있는 북극의 풍경을 생생하고 서정적으로 묘사해 아름답고도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그린란드에서 쓰는 말들에 묘사된 부분들을 읽으면 이들의 자연을 묘사하는 언어가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고 사라져 간다는 생각에 씁쓸함도 느꼈다.

예쁜 우리나라 말도 사라져 간다.

 

" 유빙의 표면은 해류와 얼음판이 충돌해서 위로 솟구치게 된 얼음 덩어리인 이부니크와 얼음 둔덕인 마닐라크, 바람이 단단한 바리케이드 처럼 압축시켜 생성된 눈인 아푸히니크로 이루어진 황무지다. 

같은 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얼음을 들었을 때 썰매 뒤에 흩날리는 눈보라인 아기우피니크를 얼음 위로 날려보낸다." P549


"11월에는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나는 덴마크의 겨울을 존중한다. 추위는 온도계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실제 기온보다 바람의 세기와 상대적 습도에 좌우한다.… 차고 끈적끈적한 11월의 첫 소나기가 젖은 수건처럼 내 얼굴을 치면, 나는 모피를 댄 캐퓨친과 검은 알파카 레깅스, 스코틀랜드식 긴 치마와 스웨터, 검은 고어텍스 망토로 소나기를 맞는다." 

 

"우리가 어떤 시점을, 명확히 구별되면서도 특별한 순간에 일어난 일과 같은, 자신의 존재속으로 파고드는 돌파구로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어쩌면 그 기억은  틀렸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이나, 우리 자신도 언젠가 죽게 될 거라는 통찰의 순간, 눈에 대한 사랑은 실제로는 급작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 그 애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요." 라는 생각에 시작한 스밀라의 행보가 초반엔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지만 스밀라의 생각과 경험을 같이 읽어보다보면 스밀라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얼음을 닮은 그녀(얼음을 만지고 있으면 차가워지고 점점 더 뼛속까지 차가움을 느끼게 되지만 그 다음엔 뜨거운지 차가운지 구분할 수 없는...)의 아이에 대한 모성애와, 이누이트 출생에 대한 애정, 그리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과 행동하는 실행력을 보면 바로 이런 인물이 진정한 여성 히어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 호흡과 집중력이 필요한 책이지만 왜 이 책을 그토록 추천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다. 만약 책을 읽고 싶으시다면 미리 그린란드와 덴마크에 대한 텍스트 정보와 시각정보를 한 번 습득 하신 후에 보시면 스밀라가 느끼는 이 추위나 눈에 대한 감각을 같이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라고 말하는 덴마크 여자의 목소리에 조용히 밑줄을 그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머문 적이 있던 코펜하겐에서 내가 느낀 당혹스러운 추위 때문이기도 했다.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1993), '덴마크 올해의 작가상'(1992) 등 수많은 상을 휩쓴 문제작이다. 1997년에는 빌 어거스트 감독에 의해 'Smilla's Sense of Snow'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