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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가 읽은

[2017 독서] 젊은 느티나무 -강신재-

by 엘데의짐승 201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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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 I 문학과 지성사

한국 현대 소설을 읽는다는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나와 같은 하늘과 별을 직접 바라보았던 사람이 쓴 글은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은 강신재의 중단편을 엮은 소설집.

1924년생. 이화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결혼을 하여 제적, 1949년 주부이던 그가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삶이 곧 소설의 전부인 듯 6.25전쟁 전후 우리나라의 모습, 특히 다양한 여성의 삶을 여러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소설집이 바로 이 젊은 느티나무가 아닐까 싶다.

 

소설이 출간된 해는 1956년

소설속 현규는 22세 숙희는 고등학생 18세.

이혼한 엄마가 새로 결혼하며 생긴 오빠를 숙희는 사랑해 버리고 짝사랑일 줄만 알았던 숙희의 속알이는 작은 사건을 통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오빠와 동생사이임을 고민하며 고향으로 내려간 숙희를 현규가 찾아가 고백하고 달랜다는 내용.

사회적 금기를 소재로 쓴 소설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것 같다.

 

 

추가

 

나는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강신재님의 글 전개 방식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우선

 

1. 등장인물에 대해 상당히 불친절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그'가 나왔다가, '오빠'가 나왔다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초반에 좀 갑갑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다 나중에 그 인물의 정체를 드러낸다.

이런 전개방식은 이 '젊은 느티나무'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에서도 마찬가지. 그런 패턴?을 약간 알고 나니 소설이 더 재미있어졌다.

 

2. 그리고 갈등 표현이 너무 재미있고 공감되었다.

 
현규를 사랑한다는 일 가운데 죄의식은 없었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무슈 리를 그런 의미에서 배반하는 것은 곧 네사람 전부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파멸이라는 말의 캄캄하고 무서운 음향앞에 나는 떨었다. P117
 
‘엄마의 아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한다면 엄마는 어떤모양으로 내 편에 서줄까? P123
 
전류 같은 것이 내 몸속을 달렸다. 나는 깨달았다. 현규가 그처럼 자기를 잃은 까닭을. 부풀어 오르는 기쁨으로 내 가슴은 금방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새우처럼 팔다리를 꼬부려 붙였다. 소리 내며 흐르는 환희의 분류가 내 몸속에서 조금도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p121 
 
3. 역시나 상당히 건전한? 결말이었다.
뭔가 아슬아슬한 선을 넘을 듯 말듯 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작가만의 스타일이 보였다. 극한으로 끌려가는 듯 하지만 이내 스토리와 주인공은 그 가운데서 결말을 맞이하는 재미를 선사해 주는 것 같았다.
 
 
늦게 이 책을 알게 된게 조금 아쉬웠다. 20대쯤 혹은 고교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리고 오늘 다시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떤 감정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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